[이창] 불쾌한 정의
글 김영하(소설가) 2006-01-13
작가가 된 이후에 가장 많이 받은 질문은 사실, 왜 경영학과를 나왔느냐는 것이다. 대답은 정해져 있다. “효도하려고요.” 부모님들은 이상하게 경영학과 같은 데를 좋아하신다. 좀 집요한 사람은 “대학원까지 졸업하셨잖아요?”라고 캐묻는다. 그쯤 되면 답이 길어진다. 내가 대학을 졸업할 무렵엔 석사장교라는 제도가 있었다. 6개월만 복무하면 그만인, 지금 생각하면 어떻게 그런 환상적인 제도가 있었나 싶은데, 하여간 있었다. 졸업할 무렵이 되자 나는 잔머리를 굴려 가장 족보를 구하기 쉬운 우리 과의 대학원으로 진학을 했는데 하필 내가 입학하던 해 석사장교 제도가 폐지돼 버렸다. 한 마디로 신기루 같은 이상한 병역제도였다. 어찌어찌 졸업을 한 후에 입대를 했는데 경기도 화성군에 본부가 있는 모 향토사단 헌병대 수사과에 배치되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헌병대 수사과가 나 같은 예비 작가에게는 훨씬 잘 맞았다.
나는 거기에서 하루 종일 수사 서류들을 타이핑하고 탈영한 병사들에게 귀대를 호소하는 편지를 쓰고 군검찰과 법원을 오가고 뭐 그러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탈영병, 폭행범, 강간범 심지어 살인범까지 만났다. 헌병대라는 곳은 피의자 입장에선 무시무시한 곳이다. 수사관들이 때린다거나 무슨 가혹행위를 하는 것도 아닌데 이상하게 병사들은, 설령 죄를 짓지 않은 병사들조차도, 일단 헌병대 건물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잔뜩 주눅이 들었다. 거기에서 나는 수사와 관련된 거의 모든 것을 어깨 너머로 배웠다. 사건이 없는 날이면 수사관들의 수사지침서를 읽었고 증거를 다루는 법, 조서 꾸미는 방식, 수사 서류의 종류, 사건 처리의 절차를 익혔다. 물론 큰 사건이 터지면 며칠 밤을 새기도 했다.
가끔은 영창에 내려가 미결수들과 잡담도 하고 놀았다. 영창에서 미결수들은 보통 2열 횡대로 앉아 책을 읽으며 하루를 보냈다. 거기에도 나름의 서열이 있어 일찍 들어온 순서대로 뒷줄 구석에, 새로 들어온 미결수들이 앞쪽에 앉았다. 시커먼 잡범들 사이에 가끔 평생 법 없이도 살 것 같은 어린 병사들이 조용히 앉아 있었다. 군법상의 ‘항명’죄를 범한 미결수들이었는데 매달 두세 명씩 꾸준히 들어왔다. 이들이 바로 말로만 듣던 여호와의 증인이었다. 이들은 총기 수여식에서 총을 잡기를 거부하고 바로 헌병대로 직행했다. 매달 겪는 일이기 때문에 모든 절차는 마치 통조림 공장처럼 착착 진행되었다. 총기 수여식장에서 “여호와의 중인 손들어”라고 말하면 그들은 손을 들었다. “집총 거부하지?” “예.” “따라와.” 우리는 그들을 인계받아 조서를 꾸몄는데 내용은 언제나 똑같았다. “너는 이사야서 몇 장 몇 절의 이러이러한 구절 때문에 집총을 거부하는 것이지?”라고 물으면 그들은 순순히 그렇다고 답했다. 조서 작성이 끝나면 그들은 영창에 입감되어 맨 앞줄에 앉았다. 그런데 영창에 있는 잡범들은 이상하게 이 항명자들을 싫어했다. 폭력이나 강간, 탈영 따위로 들어온 주제에 그들은 근무자 몰래 여호와의 증인들을 쥐어박고 모욕하곤 했다.
“야!” 한번은 내가 그러고 있는 녀석 하나를 불렀다.
“예, 47번 아무개 강간입니다.” 사단 영창에는 언제나 자기 이름 뒤에 범한 죄를 붙여서 복창하는 특이한 관등성명 문화가 있었다.
“앞에 항명은 왜 때리나?”
“이 자식들, 적이 쳐들어오면 제일 먼저 도망갈 놈들입니다.”
나는 터져나오는 웃음을 참으며 다시 그를 불렀다. “어이!”
“예, 47번 아무개 강간입니다.”
“너나 잘해, 인마.”
“예, 47번 아무개 강간, 알겠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버티면 항명자들은 재판에서 통상 3년형을 선고받고 수원교도소로 이감되었다. 얼마 전 인권위에서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인정하라는 권고를 했다고 한다.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는 그들을 강간이나 폭행, 절도 같은 잡범들과 섞어놓아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그건 정의에 대한 우리의 감각, 그 미묘하고 고급한 정신적 쾌감을 훼손한다. 그리고 우리도 모르는 새 우리 모두를 가혹하고 무도한 자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그들을 감옥에 넣어 처벌하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정의와 그들의 정의를 만족시킬 그 어떤 접점이 어딘가엔 반드시 존재하리라 믿는다.
[이창] 애국의 길?
글 김영하(소설가) 2006-02-03
올해는 내가 결혼 생활을 시작한 지 10년째 되는 해다. IMF 직전인 97년 봄. 나는 이미 데뷔한 신인작가였지만 그 수입만으로는 살 수가 없어서 한국어학당에서 한국어를 가르쳤고 아내 역시 나와 같은 처지의 비정규직 강사였다. 그 뒤로 많은 것이 변했지만 변하지 않은 것도 있다. 예를 들어 우리 사이에는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가 없다. 몇번쯤 아이를 가져볼까 생각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결국은 갖지 않는 쪽으로 결론을 내렸다.
지지난해 겨울, 자식이 넷이나 되는 부산의 한 대형서점 주인은 내게 아이가 없다는 얘기를 듣더니 갑자기 입에 거품을 물기 시작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애를 안 낳아서 나라가 큰일이라는 것이다. 출산율이 저하되면 국가경쟁력이 약해지고 어쩌고저쩌고. 듣고 있자니 끔찍했다. 만일 불임 부부가 앞에 앉아 있었다면 어땠을까 싶었다. 아이를 갖지 않는 사람도 있겠지만 가질 수 없는 사람도 세상에는 있을 텐데 말이다. 그 폭력적인 설교가 듣기 괴로워서 “그럼 사장님은 애국하려고 넷이나 낳으셨어요?”라고 묻고 싶었지만 그런다고 알아들을 양반도 아닌 것 같아 잠자코 있었다. 가끔 나는 그런 식으로 사적인 문제를 국가경쟁력과 결부하여 떠드는 인간들에게 짐짓 심각한 얼굴로 “제가 무정자증이거든요”라고 말해 입을 막아버린 적도 있다. 하지만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지난 10년간 하지 않은 일 중에는 선거도 있다. 나는 아직도 내 한표가 소중하다는 말이 납득이 안 된다. 한표는 그냥 한표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한표로 등락이 결정되는 경우도 있다며 나를 설득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로또에 당첨될 가능성이 있으니 로또를 사라는 얘기와 비슷하다. 내 선거구에서 내 한표로 내가 지지하는 후보가 당선될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나는 그 어떤 정치적 신념에도 휘둘리지 않고 살고 싶은데 투표를 하게 되면 필경 특정한 정치적 신념에 깊이 연루되고 말 것이 분명하다. 자기가 산 주식은 반드시 오를 거라 믿는 것과 마찬가지 심리상태가 될 것이다. 확률적으로 무의미한 한표를 던지고 그런 부담스런 심리적 역동을 겪게 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부당해 보인다.
아이 문제도 어떤 면에서 선거와 비슷하다. 내가 아이를 낳는다고 출산율이 갑자기 상승할 리도 만무하다. 국가적 이슈도 아니고 그저 우리 부부의 개인적 결정일 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아직도 아이가 고양이보다 좋은 이유를 잘 모르겠다. 훨씬 시끄럽고 요란하며 많은 돈이 들 것이다. 가끔 귀엽겠지만 그건 고양이나 개도 마찬가지다. 자기 아이니까 기대도 크겠지만 결국 별 볼일 없는 인간으로 쓸쓸하게 살아가게 될 것이다. 내 아이라고 유독 잘되리라 믿을 근거가 어디 있겠는가. 십대가 되면 더이상 귀엽거나 예쁘지도 않은 것이 사고를 치고 부모에게 반항하다가 이십대가 되면 자기 삶을 찾아 떠나갈 것이다. 나는 아이를 실망시키고 아이는 나를 한심해하겠지. 어떤 친구는 내게 늙어서 쓸쓸할 거라고, 그때를 위해 하나 낳아놓으라고 말하지만, 아이가 있든 없든 노년은 쓸쓸할 것이다. 있는 자식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아예 없던 것보다 더할 것이다. 생은 누구에게나 얼마간은 외로운 것이 아니겠는가. 또 어떤 동료 작가는 아이를 낳아봐야 인생을 알 수 있다며 나를 설득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어쩌면 경험주의의 오류일지도 모른다. 경험해봐야 아는 것도 있겠지만 오히려 경험했기 때문에 못 보는 것도 있는 법이다. 사실 주변에서 정말 인생을 아는 것 같은 부모는 거의 본 적이 없다. 그들은 아이들과 하루하루 부대끼느라 오직 앞만 보고 달리는 것 같았다. 인생을 아느냐 모르냐의 문제가 정말 출산과 관계가 있을까? 아니다. 그렇게 인생을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세상이 이럴 리는 없다. 어차피 인생은 아무도 모르는 것, 그저 막막한 안개를 뚫고 전진하는 것일 뿐. 그러니 제발 남한테 이래라저래라 충고 좀 하지 말았으면 좋겠다. 애국이든 뭐든, 그냥 멋대로 살게 좀 내버려두었으면 좋겠다. 어차피 무자식의 외로움은 내가 감당할 일이지 다른 누가 대신해줄 일도 아니지 않은가. 왜 누군가가 숙고하여 내린 개인적 결정에 엉뚱한 범주를 들먹이며 설득하려 드는 걸까. 타인의 사적인 결정에는 알아서 침묵해주는 정도의 센스? 이게 그렇게 무리한 요구란 말인가.
[이창] 복무염증과 애인변심
글 김영하(소설가) 2006-02-17
헌병대 수사과 시절 얘기를 한번만 더할까 한다. 군대에서는 사건이 터지면 헌병대 전화통에 불이 난다. 먹이사슬 구조와 비슷하다. 육군본부는 군사령부에, 군사령부는 군단에, 군단은 사단에, 사단은 연대에, 연대는 대대에 사건에 대해 질문한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예를 들어 총기를 가지고 탈영을 했던 병사가 검거되었다고 치자. 군의 모든 단계에서 그 병사가 왜 총을 들고 탈영을 했는지를 궁금해한다. 그들도 상부에서 쪼이고 있으므로 다급할 수밖에 없다. 그러니 수화기를 들면 대뜸 욕부터 쏟아진다. “야 이 개새끼야, 너네 수사과장 바꾸란 말야!” 좋은 소리를 들었을 리 없는 수사과장은 전화를 끊자마자 수사관들을 족친다. 그렇지만 상부의 군인들만 욕할 수는 없는 게 대중을 대신하여 기자들이 그 ‘이유’라는 걸 묻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해 우리 모두는 ‘이유’에 중독돼 있다. 이유가 공급되면 안심이 되고 이유가 없으면 불안해한다.
그래서 헌병대에서는 아예 연말이 되어 범죄통계를 낼 때 범죄의 이유를 명시하여 분류한다. 군대답게 그 이유라는 게 몇 가지 없다. 주로 이런 식이다. 군생활이 싫다-복무염증. 집구석이 어수선하다-가정불화. 몸이 아파서 군생활을 할 수가 없다-신병비관. 애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신었다-애인변심. 무슨 사자성어 놀이 같지만 사실이다.
“야, 왜 탈영한 거야?”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그냥 불현듯….”
“애인이 맘 변한 거 아냐?”
“뭐 그러기는 했지만 애인이라고 하기에는 좀 뭣한 관계였습니다. 또 이번 탈영은 딱히 그런 거라기보다….”
“야, 됐어. 애인변심이구먼.”
이런 식이다. 그런데 헌병대만 그런 게 아니다. 경찰도 비슷하다. 대형사건이 터지면 기자들이 몰려들고 경찰청에서부터 일선 경찰서까지 라인을 따라 줄줄이 어서 보고서를 올리라고 닦달을 해댄다. 대부분은 ‘이유’를 묻는 것이다. 그런데 그 이유(범죄동기)와 결과(범죄사실) 사이의 인과관계에 대한 경찰의 상상력이 탈영병을 다루는 헌병대의 수준과 크게 다르질 않다는 게 문제다. 얼마 전 일명 ‘발바리’의 검거 직후 나온 경찰의 발표를 보면 입이 딱 벌어진다. “여자 승객이 무시하는 바람에….” 물론 이 기사는 대형 포털의 뉴스게시판에도 그대로 떴다. 그 첫 승객이 무시했을 리도 없다고 나는 생각하지만 무시했다 해도 그게 100여회가 넘는 연쇄성폭행의 ‘이유’일 리가 없다. 경찰은 말 같지도 않은 이유를 기자회견에서 반복하고 기자들은 그걸 옮겨 적으면서 미래의 범죄자들에게 힌트를 준다.
이번에만 그랬다면 모르겠지만 이건 남자 범죄자와 여자 피해자가 있는 사건마다 반복된다. 경찰과 범인이 공모하는 일종의 게임처럼 생각될 정도다. 책임을 다른 약자(예를 들어 밤늦게 다니는 여성)에게 돌리는 범인의 말을 흘림으로써 은연중에 범인을 일찍 검거하지 못한 자신들의 책임을 면하고자 하는 술책이 아닌가 의심스러울 정도다. 연쇄살인범 유영철 역시 처음 체포될 당시 동거녀가 떠나버려 복수심에 범행을 결심했다고 진술했는데 역시 받아 적을 가치가 없는 ‘이유’였고 그대로 보도되었다. 그런 ‘이유’가 나쁜 것은 괘씸해서가 아니라 우리에게 그 어떤 도움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연쇄성폭행과 연쇄살인을 막는 데에 그들의 그 ‘이유’가 과연 도움이 될까? 택시기사를 무시하지 말고 동거남을 버리지 말자? 이건 기자회견을 가장한 경찰의 대 여성 협박이다. 그리고 이런 엉터리 이유들이야말로 복무염증과 애인변심의 변형된 예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유를 공급해달라고 아우성치고 경찰과 언론은 간단한 이유를 넘겨주고 끝이다.
경찰 수사권 독립도 논의 중이고 위상도 높아진다는데 그 높아질 위상에 걸맞은 부탁 하나만 하고자 한다. 쉽게 이유가 가늠이 안 되는 사건에 대해선 차라리 입을 다물어달라. 피의자가 뭐라고 떠들어대든 “정확한 이유는 조사 중에 있습니다”라고 말하라. 그리고 조용하고 신중하게 범죄자의 심리와 그들의 범행을 촉발한 심리적 방아쇠, 그리고 그런 연쇄범죄가 가능했던 진짜 이유들을 알려달라. 안전하게 살고픈, 그리고 이상한 ‘이유’로 또 한번 열받고 싶지 않은 시민의 부탁이다.
[이창] 별의 임무 - 그저 빛나기
글 김영하(소설가) 2006-03-03
최근에 베스트셀러가 된 스티븐 레빗의 <괴짜경제학>이란 책이 있다. 내용 중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부분은 한 마약 갱단의 장부를 통해 그들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장면이었다. <대부>나 <좋은 친구들> 같은 영화에서는 보여준 바 없는 것들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이런 질문에서 출발한다. “도대체 사람들은 왜 그 위험한 마약 갱이 되려고 할까?” ‘멋있어 보여서’ ‘청소년의 영웅심리로’ ‘결손가정에서 자라나서’ 같은 설명을 경제학자는 아마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별로 설득력이 없기 때문이다. 대신 장부를 분석해봤더니 그 갱단 조직은 놀랍게도 맥도널드 같은 프랜차이즈 기업과 유사한 구조를 갖고 있더라는 것이다. 마치 ‘패밀리마트’ 신촌점을 내듯이, 새로 갱단의 지부를 설립하려는 자는 ‘검은 사도단’ 이사회의 승인을 받는다. 수익의 50%를 납부하기로 하고 대신 이름을 빌리는 것이다. 자, 이제 계약도 하고 이름도 빌렸으니 뭘 한다? 패밀리마트와 똑같다. ‘알바’를 뽑아야 하는 것이다. 알바(갱 용어로는 ‘땅개’)들은 시간당 5달러도 못 벌지만 시카고의 빈민가에는 대기표까지 줘야 할 정도로 지원자가 많다. 다섯명 중 한명은 거리에서 총을 맞아 죽는다는 이 위험한 노릇을 왜 그렇게 하고 싶어하는 것일까?
검은 사도단 갱단의 지부장은 멀쩡한 대학을 나온 인텔리였다. 그는 고급 승용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엄청난 연수입을 벌며 호화롭게 살았다. 반면 그의 ‘땅개’들은 합숙소에서 살며 패스트푸드를 먹고 툭하면 길에서 총에 맞아 죽는 삶을 계속했다. 이들은 왜 분배와 평등을 요구하지 않을까? “저, 형님. 차를 좀 줄이시고 저희 봉급 좀 올려주십시오”라고 왜 말하지 못한단 말인가. 저자는 ‘인센티브’의 측면에서 그 이유를 분석했다. 지부장의 호화스러운 삶 그 자체가 ‘땅개’들에겐 인센티브로 작용한다는 것이다. 지부장은 그들의 미래인 것이다. 만약 갱단의 지부장이 검소하게 살며 지하철을 타고 다닌다면 조직은 당장 궤멸될 것이다. 목숨을 걸고 마약을 팔 만한 인센티브로는 너무 부족한 것이다. 만약 지부장이 그렇게 살기로 결심했다면 땅개들에게 국민연금과 의료보험, 충분한 월급과 복지혜택을 보장해주어야 할 것이다.
나는 이 부분에서 작은 통찰을 얻었다. 세상에는 극과 극 사이가 대단히 좁은 직업과 아주 넓은 직업이 있다. 예를 들어 우편배달부의 최고 연봉과 최저 연봉의 골은 영화배우의 그것에 비해 그리 크지 않다. 장동건의 세계와 이제 갓 영화계에 들어온 신인 배우는 비교가 무의미할 정도로 모든 면에서 엄청난 격차가 있다.
내가 아는 한 음악 프로듀서는 내로라할 가수들을 많이 키워냈는데 언제나 비싼 외제차를 타고 다녔다. 그걸 볼 때면 ‘뭘 저렇게 사치를 부리나’ 싶었는데 <괴짜경제학>을 읽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았다. 그런 차를 타고 다녀야 재능있는 가수 지망생들이 모여들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검소하고 소박하다면 꿈이 큰 지망생들은 다른 프로듀서를 찾아 떠나갈 것이다. 이는 조폭의 큰형님이 왜 무리해서라도 비싼 차를 타고 다니는지에 대한 좋은 설명이 된다. 그 차는 다른 조직에 보여주기 위한 것이기도 하지만 밑에서 고생하는 ‘동생’들을 위한 것일 수도 있다.
영화계 스타들을 향해 “자기는 외제차 타고 다니면서” 혹은 “가난한 조연과 스탭들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안 하면서”라고 비난하는 소리들을 듣게 된다. 하지만 많은 인력이 영화계로 자발적으로 몰려든 데에는 영화에 대한 열정도 무시할 수 없겠지만 화려한 스타들의 존재가 강력한 인센티브로 작용했으리라는 점도 무시할 수 없다. 영화제의 붉은 카펫을 밟는 감독들, 화려한 의상을 입은 배우들, 그들이 타고 다니는 멋진 차는 그 자체로 자기 재능을 시험해보려는 수많은 젊은이들을 영화판으로 끌어들인다. 그러니 영화계 입장에서 볼 때 스타의 가장 큰 임무는, 비록 대중의 욕을 바가지로 먹는 한이 있어도 저 하늘의 별처럼 환히 빛나며 화려한 삶을 살아주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최고의 스타들이 검소한 차를 타고 국민주택 규모의 아파트에서 살며 지하철을 타고 현장으로 가는 모습은 참 보기에 좋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런 날이 온다면 그날이 바로 우리나라 영화계의 종말일 거라는 생각이 든다. 영화계는 질투와 선망이라는 에너지로 이뤄진 성운이다. 그러니 스타는 고독할 수밖에 없다. 별로 달가운 결론은 아니지만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스타들이여, 저 뭇별들 가운데 그저 찬란히 빛나주시라. 그게 바로 별이 하는 일이다.

[이창] 개미와 베짱이
글 김영하(소설가) 2006-03-17
이솝우화 중에 <개미와 베짱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개미가 여름에 열심히 일하는 동안 베짱이는 노래를 부르며 일하는 개미들을 조롱한다. “어이, 개미들. 여름에 겨울 준비를 하다니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냐?” 작가가 된 뒤 이 이야기를 다시 보니 생각보다 꽤나 섬뜩하다. 개미들은 겨울이 되어 밥을 구걸하는 베짱이를 냉정하게 거절하고 심지어 공격하기까지 한다. “우리가 열심히 일할 때 당신은 뭘 했나요?” 그리곤 끝내 밥을 안 준다(그럴 수가!).
얼마 전 ‘쌀과 영화’라는 행사가 열렸다고 한다. 쌀과 영화는 언뜻 보기에도 잘 어울리는 단어가 아니다. 한여름 뙤약볕에서 일하는 전형적인 개미인 농민과 자신의 재능을 가지고 ‘노는’ 영화인들의 만남이었기 때문이다.
2006년 스크린쿼터 투쟁의 난점은 “왜 한국영화를 봐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설득력있는 대답이 준비돼 있지 않다는 것이다. 신토불이식의 민족주의는 적어도 먹고사는 문제에 관해서는 이제 약발이 다 했으며 반도체를 주님으로 모시는 신자유주의자들, 비교우위론자들을 설득하기 어렵다. 정부는 더 나아가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데 그것은 “왜 영화를 봐야 하는가? 영화와 자동차(혹은 반도체)를 바꿀 수는 없는가?”와 같은 질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영화를 좀 덜 보더라도 미국시장에 자동차나 반도체를 더 갖다 팔아 일자리를 만드는 게 좋지 않은가 묻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베짱이들은 개미들의 이런 배짱에 속수무책이다. 가끔 나는 문학의 필요성에 대한 글을 청탁받곤 한다. 그러나 한번도 왜 문학이 필요한지 제대로 말해본 적이 없다. 소설이나 시를 안 읽는다고 갑자기 가정이 파탄나고 회사에서 쫓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한국영화를 안 보고 산다고 혹은 아예 영화를 안 보고 산다고 무슨 큰일이 나겠는가. 단지 조금 삶이 무료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먼 훗날 문득 마음 한구석이 공허하다고 느낄 수는 있을 것이다. “영화가 밥이냐, 쌀이냐?” 스크린쿼터 축소를 찬성하는 어떤 이의 리플은 개미와 베짱이간의 이 대결을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물론 영화는 밥도 아니고 쌀도 아니다. 영화인들도 그것을 잘 알고 있다.
베짱이들에겐 승산이 없다. 그들은 패배할 운명을 타고났고 해방노예 이솝은 이미 3000년 전에 그걸 알고 있었다. 개미들이 박수를 치고 있을 때야 괜찮지만 정색을 하고 “밥이냐 쌀이냐” 달려들면 언제나 진다. 개미는 베짱이에게 아주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다. 단지 자기가 뙤약볕에서 일할 때 놀았다는 것 때문만은 아니다. 개미는 베짱이의 재능에 매료되면서도 자신에게 없는 그 재능을 질투한다. 개미가 보기에 베짱이의 노동은 노동이 아니라 유희에 불과하다. 아무리 최민식이 주연배우는 그만한 대가를 받을 만하다고 울분을 토해도 개미들은 받아들이지 않는다. ‘얼굴 몇번 내밀고 몇 억원씩 받다니!’라고 생각하고 수요와 공급의 법칙 같은 것은 슬쩍 외면한다. 그렇다고 그런 개미들을 비난해선 안 된다. 노동 시간과 임금을 대비시키는 것은 인류의 오랜 관습이었고 지금까지도 꽤 많은 곳에서 유효하기 때문이다. 개미들은 자판 몇번 두드려서 떼돈을 번 베스트셀러 작가와 CF로 일년에 몇 십억원을 번다는 배우와 스타감독들을 선망하며 증오한다. 추운 겨울 그들이 문을 두드리면 언제든지 문전박대할 준비가 되어 있다. 아무리 봐도 베짱이들에겐 승산이 없다.
그런 면에서 광대가 궁정에 들어가 왕의 총애를 받다가 혀가 잘리고 내쳐진다는 <왕의 남자>의 대박과 스크린쿼터 축소가 겹쳐지는 것은 실로 상징적이다. 예술가들은 어느 날 문득 스스로의 광대적 운명을 자각하게 된다. 밑에서 줄타기를 보는 개미들이 광대가 더 높이뛰기를 원하면서 동시에 바닥으로 떨어지기를 바란다는 것을.
브루노 베텔하임이라는 오스트리아의 아동심리학자는 오래 전승돼온 옛이야기의 중요성에 대해 평생 연구해왔다. 그가 관찰해온 바에 따르면 <아기 돼지 삼형제>나 <호리병 속의 지니> 같은 이야기가 어린아이의 정신병을 줄여주더라는 것이다. 이야기 속에서 아이는 자기 내부의 욕망을 승인하고 그것을 외부 세계와 화해시키는 법을 배운다. 그는 오래 전승된 거의 모든 옛날이야기의 숨은 심리적 기능을 찬미했지만 오직 <개미와 베짱이>에 대해서만은 그 유해성을 강력히 경고하고 있다. 그 얘기는 아동이 소화하기엔 너무 폭력적인 결론일 뿐 아니라 어떤 숨은 구조나 패러독스도 없어 그야말로 아이에게 공포심만 심어준다는 것이다. 지금 마음 놓고 베짱이들을 공격하는 개미들, 또 그 뒤에 숨은 ‘왕과 환관’들은 그의 주장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예술가는 자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입증할 수 없는 운명을 타고났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이창] 해물스파게티
글 김영하(소설가) 2006-03-31
별 까닭없이 공포스러운 음식이 있다. 나한테는 해물스파게티가 그렇다. 늘 좋아라 먹어치우면서도 그걸 만드는 일에 대해서는 근거없는 공포심을 갖고 있었다. 내가 스파게티를 만들면 면은 불어터지고 토마토소스는 끓어넘치고 해물은 흐물흐물해지고 말 거야. 주린 배를 움켜쥐고 스파게티를 기다리던 사람들은 원망스러운 눈으로 날 쳐다보겠지.
“도대체 죄없는 스파게티에 무슨 짓을 한 거야?” 사람들은 화를 내고 식탁을 엎어버리겠지. 나는 라면도 잘 끓이고 짜파게티도 잘 볶는 편인데 유독 스파게티에 대해서만은 도저히 내가 만들 수 없는 음식이라고 지레 겁을 집어먹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번 겨울. 모두와 연락을 끊고 고요히 집에 틀어박혀 장편소설을 쓰다보니 내 정신과 육체에 무슨 화학적 변화가 일어났던지 문득 내가 만든 스파게티가 먹고 싶어졌다. 좋아. 우리 동네에는 ‘마포농수산물시장’이 있어. 산보하다 들러보니 신선한 바지락과 오징어, 토마토를 엄청 싸게 팔고 있더군. 스파게티 면을 삶고 바지락과 오징어, 토마토를 넣어서 먹으면 되는 거 아니겠어?
결심을 한 나는 네이버에 들어가 “해물스파게티”를 검색해봤다. 그럴듯한 레시피들이 많이 있었다. 재료들을 수첩에 적은 뒤, 용감하게 시장으로 출발했다. 재래시장에 가서 해산물을 사본 것은 초등학교 때 엄마 심부름으로 꽁치를 사온 이래 처음이었다. 활력 넘치는 아주머니들이 씩씩하게 생선과 조개류를 팔고 있었다.
“바지락 어떻게 해요?” 내가 묻자 아주머니는, “뭐 하시려구요?”라고 반문했다. 나는 흔들렸다. 아, 과연 이 싱싱한 바지락으로 뭘 하려는 걸까? 차마 “해물스파게티를 만들려고요”라는 대답이 나오질 않아서 나는 머뭇거렸다. “흥, 해물스파게티? 그건 아무나 하는 줄 알아?” 아주머니가 비웃을 것 같았다.
“저, 그냥 좀 삶아서….” 아주머니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지락을 한 바가지 퍼 무게를 달더니 비닐봉지에 담아주었다. 받아드니 묵직했다. 벌써 큰일을 해치운 기분이었다. 스파게티 면과 토마토소스를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몇 시간 뒤, 해가 지고 저녁이 되었다.
“정말 할 수 있어?”
아내는 미심쩍은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최대한 프로처럼 보여야 했다. 나는 커다란 냄비를 꺼내 물을 잔뜩 담았다. 아내는, “면 삶는데 물이 너무 많은 거 아냐?” 물었다. “물이 너무 적으면 면이 잘 안 삶긴대.” 나는 아무 근거도 없는 말을 근거있는 척 말했다. 아내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쨌든 물은 끓기 시작했다. 나는 마늘과 고추를 썰어 올리브유를 두른 팬에 볶기 시작했다. 레시피에는 고추의 색이 변하면 바지락과 오징어를 넣으라고 되어 있었다. 그러나 고추의 색이 언제 변하는지 잘 알 수 없었다. 붉은 것도 있고 검붉은 것도 있고 분홍색도 있었다. 에라, 모르겠다. 해감시킨 바지락과 잘게 썬 오징어를 팬에다 쏟아부었다. 치지지직. 바지락들은 잠시 뒤 못내 억울한 듯 조금씩 입을 벌리기 시작했다. 끝까지 입을 열지 않은 독립투사 바지락도 있었다. 바지락이 입을 열면 토마토소스를 부으라던데, 도대체 몇 퍼센트의 바지락이 입을 열어야 되는 걸까? 다수결인가 아니면 만장일치인가? 궁금했다. 아차, 면. 스파게티 면 200g을 넣으라고 되어 있었는데 200g이 도대체 얼마야? 일단 대충 넣고 펄펄 끓는 토마토소스도 저항하는 바지락 위에 쏟아부었다.
면이 다 삶아졌는지는 면을 건져서 타일에 던져보면 된다는 네이버 지식인의 충고를 따라 수십 가닥의 면을 타일에 던졌지만 면은 자꾸 튕겨져나와 가스레인지 뒤로 떨어져버렸다. 그러나 불쌍한 바지락을 더이상은 끓일 수가 없어 마침내 불을 끄고 소스를 국수 위에 부어야 했다. 삶아진 면은 넣기 전과는 달리 엄청난 양으로 불어 있어 코끼리도 먹일 수 있을 정도였다. 그래도 아이보리색 면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불그죽죽한 소스를 얹어놓으니 보기엔 참으로 그럴듯했다. 포크로 감아 한입 먹어보니 맛도 크게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좋아하는 바지락을 원없이 먹을 수 있다니 그리고 이걸 내 스스로 만들었다니! 썩 괜찮은 기분이었다.
엄청난 양의 스파게티를 먹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요리하고 글쓰기는 비슷한 데가 있구나. 해보기 전에는 엄청난 공포심에 사로잡히지만 막상 시작하면 어떻게든 된다는 것. 다른 점도 있다. 요리는 하면 할수록 익숙해지지만 글은 영원히 그렇게 안 된다는 것. 요리는 즉각적인 행복감을 주지만 글쓰기의 행복감은 좀더 뒤늦게 많이 에둘러 천천히 온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창’ 칼럼을 쓰는 일은 글쓰기보다 요리에 가까웠던 것 같다. 마감 전엔 공포스러웠으나 마감 뒤엔 행복했다. 그 행복감의 원천이었을 그리고 그동안 읽느라 고생하셨을 독자들께 감사드린다. 그럼, 모두들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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