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준비해온대답1 김영하 『오래 준비해온 대답』 (2020) / 김영하의 2009년도 시칠리아 여행기 41 "그럼 혹시 그동안 가고 싶었던 곳 없었어요?" PD가 물었다. "시칠리아요." 마치 오래 준비해온 대답 같았다. 그 자리에 앉기 전까지는 나는 한 번도 시칠리아에 가겠다는 생각을 진지하게 해본 적이 없었다. 거긴 어쩐지 내가 영원히 갈 수 없는 곳, 그린란드나 남극같은 곳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시칠라아라는 말이 튀어나온 것이다. 21 나이 마흔에 나는 모든것을 다 가진 사람이 되어 있었다. 국립예술대학의 교수였고 네 권의 장편 소설과 세 권의 단편소설집을 낸 소설가였고 라디오 문화프로그램의 진행자였고 한 여자의 남편이었다. 서울에 내 이름으로 등기된 아파트가 있었고 권위있는 문학상들을 받았고 서점의 좋은 자리엔 내 책들이 어깨를.. 2021. 4. 17. 이전 1 다음